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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에세이

연재를 마치며

최고관리자
2021-11-15 08:58:29 54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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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연재할 정도로 재즈를 좋아하고 즐긴다는 소문이 나면서 어쩌다 노래방에라도 갈라치면 동석한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불편하다. 그냥 편한 국산 가요로 분위기 잡으면 그만인데, ‘그래도 기대치에 부응해야 할텐데’ 하는 욕심 탓에 늘 ‘선곡난(選曲難)’을 겪곤 한다.

사실 정통 재즈 보컬 곡은 어렵다. 웬만한 가창력-팝 가창력과는 차원이 다른-을 지니지 않고서는 따라 부르기가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건 그런 레퍼토리가 노래방 목록에 아예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민 고민하다 절충점을 찾아냈다. 팝음악이기는 한데, 약간-그것도 쬐금-재즈 필이 들어있는 곡을 부르는 것이다.

‘삼류’ 지적 허영으로 부르는 노래

이런 노래를 부르면 곡을 잘 모르는 이들은 곧잘 박수를 보낸다. 물론 고수들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내가 즐겨 부르는 레퍼토리는 시카고(Chicago)의 <Color my world>, 팝 스탠더드인 <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 레온 러셀(Leon Russell)의 <This Masquerade>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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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y Bryant

<Color my world>는 코드 전개가 아주 독특해 장르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곡이다. 따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비슷하게 흉내는 낸다. <I left my heart in Sanfrancisco>는 도입부가 파격적이다. 굴곡이 심해 재즈 필이 난다. <This Masquerade>는 Carpenters가 불 러 히트시킨 넘버다. 중간 간주가 그 유명한 약, ‘흔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용각산> cf에 사용되던 곡이다.

노래방에서 이런 노래를 부른다는 건 취향여부를 떠나 ‘삼류 지적 허영’에 해당된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지인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퍼포먼스’ 차원을 넘기 어렵다. 그렇지만 진짜 속내는 그게 아니다. 일종의 발버둥이다. 청중이나 감상자가 재즈연주에 직접 개입할 여지가 없는 답답한(?) 현실을 넘어보려는 몸짓이다.

모던 재즈는 클래식처럼 고도로 훈련된 프로들만이 연주에 참여할 수 있는 장르다. 아마추어들이 젓가락 장단으로 넘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고색창연한 스윙시대 재즈라고 해서 쉬운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에세이를 포함한 평론은 더더구나 그렇다. 넓디넓은 재즈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글을 쓰기가 힘들다.

연주자들이 노는 물이 워낙 넓은 탓에 초심자들은 ‘무엇이 똥이고 무엇이 된장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재즈 에세이를 시작한 건 그래서다. 전문가들이 쓰는 저 높은 평론도 중요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음악애호가가 이 낮은 곳에서 쓰는 이야기도 의미가 있겠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십여 회를 연재한 결과는? 오산이었다. 기본적인 이해도 이해지만, 음악을 깊숙하게 느끼지 않고서는 흔한 잡문도 쓰기 어렵다는 걸 절감했다.

다만 글을 쓰는 동안에 이 것 저 것 뒤진 탓에 재즈에 대한 이해 폭이 조금 커진 것이 유일한 성과라면 성과다.

재즈에 빠질수록 타 장르에 관대해져

재즈가 지닌 매력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항상 ‘상상 그 이상의 세상을 상상하라’는 영화 문구가 떠오른다.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 대목이다. 명인 시드니 베쉐(Sidney Bechet)가 남긴 걸작들을 보자. 사실 이 시대에 베쉐 작품들을 평가하자면 대다수가 단순한 소품이다. 하지만 미묘한 떨림으로 가득한 소프라노 색소폰이 영화 배경에 깔리기라도 하면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초보(?) 기악 한편에는 숨 돌릴 틈 없는 현대 비밥이 있다. 작렬하는 브라스, 피를 끓게 만드는 리듬은 감상자를 압도한다.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 표지 가득 색소폰을 든 모습으로 등장하는 <Giant Steps>는 그 고전이다.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고,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음들이 난무하지만 지금은 정겹다.

재즈 관현악 세계도 있다.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는 앨범 <Let my children hear music>을 통해 신세계를 선보였다. 정교한 작곡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교차하는 멜로디는 클래식 품격에 못지않다.

소수지만 옛 맥을 이어가는 프리재즈 뮤지션도 있다. 난해하긴 해도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곡도 꽤 된다. 말랑말랑한 소프트 재즈-재즈라고 하기엔 상당히 애매하지만-도 빼놓을 수 없다. 요컨대 동과 서, 남과 북, 그 사이에 점점이 박혀있는 수많은 음악들은 밤하늘 별자리 수 만큼이나 많은 개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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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oltrane Giant Steps

 

칠레는 남과 북이 아주 긴 나라다. 그냥 길다고만 생각했는데, “모스크바에서 리스본에 이르는 길이와 같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 길이를 실감했다. 세상에! 동토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대서양 해안에 위치한 포르투갈 리스본에 이르는 거리라니! 재즈도 그렇다.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매일같이 새 음악을 접한다. 그 길은 끝없는 길이다.

통상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장르에 집착하는 사람은 다른 장르를 잘 용납하지 않는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재즈가 지닌 스펙트럼을 얼추 이해하고부터는 타 장르에 관대하다. 재즈가 지닌 오지랖이 음악을 보는 눈까지 바꾼 측면이 크다.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면서

두서없는 작업이었지만, 어설픈 글로나마 재즈 향기를 더듬었다.

“별 영양가 없는 소리 많이 한다”며 질타하는 지인도 있었고, “어디서 주워 듣기는 많이 주워 들었네”라고 놀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재즈니 뭐니 하지만 음악은 듣고 그냥 좋으면 그만 아닌가!

연재를 마감하면서 10여 년 전 일본 여행길에 구입했던 레이 브라이언트 트리오(Ray Bryant Trio)를 꺼내든다. 앨범명은 1961년작 <Con Alma>다. 서양식 굿거리 장단이라고나 할까! 독특하고도 흥겨운 스윙리듬이 절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재즈는 어떤 지점에서 포착하더라도 그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그동안 에세이를 읽어준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린다.